몇몇 가지는 변했지만, 많은 것은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있다.
Teach311.org의 멀티미디어 에디터인 류마 시네하가 숫자 ‘3’의 의미를 곱씹어본다—삼 년, 3.11과 관련된 통계를 생산한 세 현, 그리고 세 가지의 재난. 이 작품은 3.11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몇 가지의 통찰을 제시한다. 2014년에 쓴 포토 에세이에서 시네하는 죽음에 대한 수치적이고 객관적인 설명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잔해들의 사진들을 병치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재난에 대해 배우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숫자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유도한다(이시노마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찍은 사진 한 장도 포함되어 있다).
류마 시네하의 글과 사진
2011년 3월 11일,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열도를 강타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진과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제1호기에도 심각한 사고를 초래했다. 연쇄적으로 발생한 이 세 가지 재난은 “동일본대지진”, 혹은 더 짧게 “3.11”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강력한 지진은 끔찍한 쓰나미를 일으켰고 이 쓰나미는 도호쿠 지방의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마을을 휩쓸었다 (사진 1, 2). 사진 3은 오나가와 마을에서 쓰러진 건물의 잔재를 보여준다. 파괴된 콘크리트 빌딩들은 이 지역에서 너무나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사인에 대해 말하자면, 90% 이상의 사망이 익사로 인한 것이었고, 전체 사망자 중 65%가 60세 이상의 노인이었다 (Cabinet Office, 2011). 또한, 이 쓰나미는 심각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초래헀다. 원전 주변의 수많은 주민이 방사능의 확산 때문에 강제로 이주해야만 했다는 것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의 마지막 통계인 2014년 6월 자료에 따르면, 무려 21,000명 이상의 사람이 죽거나 실종됐다. 15,887명이 직접적인 재난으로 인해 사망했고, 3,089명은 3.11과 유관한 죽음이었으며, 2,615명이 실종되었다. 동시에 250,000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나 피난했다. 미야기 현, 이와테 현, 후쿠시마 현 등 세 지방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례로, 미야기 현의 사망자 수는 10,000명에 이르렀다.) 표 1은 이 세 현과 관련된 사상자 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테 | 미야기 | 후쿠시마 | ||
---|---|---|---|---|
사망 | 5,113 | 10,487 | 3,558 | |
인명피해 | 실종 | 1,132 | 1,274 | 3 |
피난 | 34,662 | 88,736 | 126,889 | |
(다른 현으로 피난) | (1,441) | (6,813) | (45,279) | |
건물/주택 붕괴 | 완파 또는 반파 | 25,706 | 238,110 | 94,825 |
표1 상세 피해 내역
사진 1: 이시노마키 시의 침수된 지역 (2011년 3월 14일, 토루 수토 씨 제공)
사진 2: 침수된 지역의 사진 (2011년 4월 16일)
사진 3: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오나가와 마을의 건물 (2011년 11월 18일)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후쿠시마 현의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대피한 후에 대피지역이 선포됐다. 나미에 시는 원전 사고 후에 필수 대피 지역으로 선정된 여러 지방 중 하나다. 사람들이 대피한 도시는 유령 마을이 되었다. 2013년 4월 이후에는 도시에 단기 체류가 가능해졌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의 수준은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였다.
사람들이 떠난 도시 안의 빌딩과 주택들은 강진에 의해 무너진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거주민들이 남긴 물건을 되찾으러 이따금 돌아왔지만, 마을은 여전히 텅 비어있다 (사진 4). 몇몇 오래된 목조 가옥들의 경우 시간에 따른 침식이 계속되면서 꾸준한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사진 5, 6). 사진 6은 사진 5에 나타난 집의 현관문을 찍은 것이다. 지붕은 지진으로 인해 무너졌고 피해는 시간에 따라 누적되고 있다. 파손된 집에는 비가 들이쳐서 벽을 곰팡이 투성이로 만들고 있다. 나미에 마을의 해안 지역에서는 쓰나미로 인해 파손된 주택, 차량, 교량 등이 삼 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사진 8, 9).
사건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광경은 계속되고 있다. 이시노마키 고교의 교장이었던 토루 수토 씨는 이렇게 말했다. “벌써 삼 년, 여전히 삼 년, 겨우 삼 년” 우리는 이 세 개의 재난을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진 4: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후 원전 사고로 인해 통제된 나미에 마을 (2014년 3월 2일)
사진 5: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후 원전 사고로 인해 통제된 나미에 마을 (2014년 3월 2일)
사진 6: 나미에 마을의 파괴된 현관문 (2014 3월 2일)
사진 7: 침식된 집의 벽은 곰팡이도 뒤덮여 있다 (2013년 4월 11일)
사진 8: 나미에 마을의 해안가 (2014년 3월 2일)
사진 9: 나미에 마을 해안가에 버려진 차량들 (2014년 3월 2일)
- https://www.npa.go.jp/archive/keibi/biki/higaijokyo.pdf
http://www.reconstruction.go.jp/topics/main-cat2/sub-cat2-1/20140527_kanrenshi.pdf - http://www.reconstruction.go.jp/topics/main-cat2/sub-cat2-1/20140624_hinansha.pdf
- 이 표는 2014년 6월 말에 발표된 재건 위원회와 지방 정부의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 http://synodos.jp/fukkou/7565
Text and photography by Ryuma Shineha
Translation: Sungeun Kim, KAIST (번역: 김성은, KAIST)
Original Post: http://www.teach311.org/2015/12/11/photo-essay-three-years-after-3-11/